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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엄마같은 가디언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열성때문에 부모를 떠나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는 한국 청소년들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이다. 중고생들이 많고 초등생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숙식을 하며 지내는 곳 또는 그 형식을 홈스테이라고 부르며,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가디언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가디언이 집 떠난 학생의 자고 먹고 입는 것을 챙기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근래에는 점점 학업을 지도하고 생활을 관리하는 기능을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의 시기가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할 일, 즉 공부를 등한히 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부모와 함께 살아도 공부를 위해 전념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집을 떠나 다른 사람의 지도 아래 하루 하루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은 가디언과 학생 상호간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공부를 하기 위한 여건 조성은 기본이고, 심리적인 안정을 갖도록 세심한 배려가 따라야 한다. 지난 학기에는 가디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아들이 참여하여 노래하는 학교 합창단의 공연이 있던 날, 남학생들만의 합창이 한 순서 있었다. 노래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남학생들이 정렬을 하고 있을 때, 안내가 흘러나왔다. “다음 곡은 우리들의 엄마들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아들이 앞에 있는 엄마는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무대 앞 좌석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모두 손에 장미를 들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엄마들에게 드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내가 앞으로 나갔다. 노래는 유명한 노래 ‘My Girl’을 ‘My Mom’으로 부분 부분 개사한 곡이었다. 모두가 웃으며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마자 아이들은 무대를 내려와 엄마들에게 꽃을 드렸다. 꽃을 받은 엄마들은 한결같이 아들을 안아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들과 엄마간의 사랑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그 때 나의 머리를 잠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행사에서 만일 부모가 한국에 있는 아이는 누구에게 꽃을 드릴까? 또 영어가 서툰 엄마가 안내를 이해하지 못해 앞에 나가 있지 않는다면 노래를 마친 아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남의 아이들도 소중하고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는데, 더우기 미국 땅에 와서 살면서 자녀 교육을 하니 다른 이들의 자녀들에게도 각별히 눈이 간다. 할 수 있다면 서로 도와 모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한계가 따른다. 가디언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 이상의 어려움과 희생이 있을 것이다. 학생이 미국에 오기 전의 환경과 성장 과정도 제각각 달라서, 부모도 아닌 입장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종종 들려오는 가디언과 홈스테이 학생들간의 불화 이야기는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이끄는 것처럼 힘든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부모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가디언들 중에는 아이들이 공부 이외에도 각종 활동을 하도록 적극 돕는 가운데 여러가지 발표회도 꼬박꼬박 가는 분들이 계시다. 스포츠 게임마다 가서 응원을 하는 가디언도 있다. 가디언이 ‘하숙’집 아줌마 아저씨가 아니라, 성장기의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을 이끌어 공부하게 하면서 다른 활동도 적극 돕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 한다면, 시대가 급변하고 교육 환경도 다른 미국 땅에서 오늘 가디언을 하시는 분들은 더욱 그 역할이 중요하고도 힘든 것 같다. 어려움 가운데 아이들을 이끄는 가디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7-13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없어도 할 수 있다

17년 전 아들이 태어나던 날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아들의 태어남을 축하하던 날, 나는 신생아실에 가 아들의 손을 보고 그만 쓰러질 뻔 했었다. 아들의 오른손 가운데 세 손가락이 마치 약물에 의해 녹아버린 듯 형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 아들의 손에 잉크를 묻히고 탁본을 만들려 하다가, 황급히 나에게 연락을 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그런 것일까, 나는 그 날 밤 한숨을 못이루고 병원 복도에서 안암동 야경을 내려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에게 온전한 손을 주시지 않았는지 수도 없이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한숨과 눈물 속에서도 아들은 무럭 무럭 자랐다. 부족한 세개의 손가락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아들은 밝게 자라서 유치원을 갔다. 또 어린 아들이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동네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학교를 다니던 모습은 지금 기억해도 정겨운 장면이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다가 들어오던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걱정이 지나쳤음을 알게 되었다. 늘 엉터리 아빠인 나는 그 때, 아들이 손가락때문에 친구들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을 적정했었다. 조금만 다르고 부족하면 무시하고 따돌리는 풍토에서, 그렇게 어린 아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학교를 잘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함께 놀고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과 헤어져 미국에 올 때, 아들은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했다. 그 후 아들이 미국에 와서도 순조롭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들이 부족한 손가락으로 인해 무언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달려들어 하면 무엇이든 성취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하나만 빼고는. 교회 성가대 반주자 생활을 20년 넘게 한 아내는 동네 꼬맹이들을 모아서 피아노를 가르쳤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을 매일 보면서도 아내는 정작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세개 부족한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교본과 음악이 온전한 손들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아는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아들에게 잠시 배우라고 했지만 아들이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 아내는 다그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그만 두었다. 미국에 온 후, 초등학교에서 아들은 오른손 손가락을 쓰지 않는 악기 가운데 바이올린을 배워 연주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부터는 트롬본을 불었다. 고등학교에서 재즈밴드까지 참여한 아들이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기가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러 간 악기사에서 한 번도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아들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니 이 아이가 언제 피아노를 배웠나,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남성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다가, 어디선가 좋은곡을 들으면 자기들이 부르기 좋게 편곡을 하곤 했는데, 결국 학과목으로도 AP 음악 이론을 수강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편곡하는 일을 능숙하게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아들은 피아노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서 편곡을 하고 작곡을 했다. 사실 옛날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아들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곡을 하고, 컴퓨터로 자기 음악을 연주시킨다. 컴퓨터는 현악 사중주도 교향악단의 연주도 모두 해준다. 그런 가운데 아들의 음악 지식이 늘어났고, 배운 적 없는 피아노이지만 흉내를 내게끔 된 것 같았다. 나의 놀라움은 아들이 양손을 다 써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없는 손가락, 3분의 1마디도 없는 그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마치 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없는 것만 보고 가르치지 않았는데, 너는 혼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쓰는구나.’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하여, 그 편에서 생각하고 그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요즘이다.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없는 것을 볼 줄 알고 쓸 줄 아는 아들을 믿는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7-06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유연해야 행복하다

‘입신양명’이라는 말이 대부분 부모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이 말은 자신을 바로 세워 이름을 떨친다는 뜻을 지녔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출세하여 유명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원래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사는 동안에 유명해지지 않아도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함으로써 후세에 인정받고 이름을 떨침을 그 의미에 포함했으나, 요즘은 조금이라도 빨리 성취하여 젊은 나이에 인정 받는 것을 선호한다. ‘충’과 ‘효’가 우리들에게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입신양명’도 중요한 덕목이 되어 모두들 이름을 내고 싶어 한다. ‘입신양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자녀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여 성취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부강하고 발전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입신양명’이라는 생각 자체가 미래 지향적이어서, 개인으로 하여금 타인에게 인정 받을 만큼의 성취를 하게 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자리에 오르고, 특출한 업적을 사는 동안 보여야만 한 개인이 행복할까? 아들이 미국에 와서 초등학교 2학년으로 학교를 들어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하루는 교회에서 또래 아이들이 모여서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서 놀면서 점수를 계산한 후, 승자를 결정하는 게임에서 좋은 점수를 기록하지 못했던 아들이 게임을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잘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게임이 되지를 않아서 속이 상했던 아들은 건물 밖에 나가서 혼자 씩씩 거리다가 아내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 날 우리는 아들을 데리고 교회를 나와서 아들을 진정시킨 후 차근 차근 아들과 대화를 했다. 어린 아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자신이 열심히 했으므로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속이 상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로 밀렸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서 더이상 게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모두 웃으면서 게임을 즐기니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차분히 타이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도대체 언제나 이기기만 해야 한다거나 항상 모든 일에서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고작 일곱살 짜리가 친구들과의 게임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그렇게 속상해 하다니. 한편으로는 그렇게 악착같은 마음이 있어야 나중에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함께 있던 친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직접 말한 적은 없었지만, 은연 중 아들에게 경쟁에서 무조건 이길 것을 가르친 것은 아닐까. 그 날 다른 집 부모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우리가 늘 아들에게 이기기만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에 비슷한 순간은 또 왔다. 학생들간의 경쟁이 심한 과학고등학교에 아들이 진학하여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고 첫 해를 보낸 후, 심각하게 전학을 고려한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우리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되어 겪었던 그 날을 떠올렸다. 시험으로 선발된 아이들끼리 무한 경쟁을 벌이는 학교에서 아들의 성적은 전에 없이 초라했고 아들의 자존심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초라한 성적으로 소위 명문대학을 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아들에게 학교를 옮기지 말고 계속해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어찌 사람이 언제나 남보다 앞서고 좋은 결과만을 얻겠느냐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던지는 노력없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하면 안되는 것과 아울러 자신이 남보다 부족해 보이고 경쟁에서 뒤에 있을 때도 그 경쟁의 장을 떠나기 보다는 계속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학교를 떠나지 않았고,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어도 여러가지 클럽 활동에 참가하면서 학교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성적도 조금씩 향상되었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면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아들의 머리 속에 있는 행복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알았지만, 아들도 나도 거기에 유연성을 더 많이 부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워 하되,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남보다 앞서지 않았다고 우울해 할 이유는 없다. 유연해야 행복하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6-29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굳세어라, 아들아

나는 아들이 공학을 공부하고 나서 세계적인 신기술을 개발하기를 원했었다. 오래 전부터 과학 기술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내가 가져 온 것은 서울에서 일할 때 과학자들을 많이 만났던 탓이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만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잘 만든 제품 하나가 한 국가를 먹여 살리는 현실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앞서가는 신기술 한 가지가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항상 하고 있었다. 아들이 공학을 공부하기를 바란 것은 그런 이유였는데, 아들에게 과학적 적성보다는 문과적 성향이 더 강함을 알게 된 뒤로는 막연하게라도 목표를 세워 공부를 독려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로스쿨을 가도록 권했었다. 어려서부터 글 잘 쓰고 질문이 많았던 아들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는 가운데 법을 공부하면, 현실 세계에서 기여할 일도 많아 보여서, 꼭 법관이나 변호사가 아니어도 여러가지 분야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기업과 정부에는 로스쿨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가?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로 서지 않아도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공학자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안 후부터는 아들에게 로스쿨 진학을 권해왔었다. 그러나 몇 개월 전, 아들은 나의 바람과 달리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영화 음악 작곡을 전공하겠다는 아들을 보면서, 부끄러울 만큼 화도 내었고,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도 다 해주었지만 아들의 의지는 강하기만 했다. 아내는 속상함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까지 지었는데, 아들은 차갑게 자기 의지의 굳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무엇으로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확인할 것인가? 왜 아들은 그리도 음악을 고집하는가? 나의 속상함은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들은 능숙하게 연주하는 악기로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적도 없었다. 학교 밴드 등에서 연주하고, 학교 합창단과 뮤지컬에서만 노래를 했지, 개인적으로 음악적 능력을 검증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타고난 재능없이 약간의 즐거움만으로 갈 길을 정하는 실수를 할까 걱정을 했다. 그런던 중, 이 달 초, 나는 아들이 지역의 다른 고등학교 스프링 콘서트에 가야한다고 해서 함께 가게 되었다. 이 지역 고교들 중에서 가장 연주를 잘 하는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 학교답게 학생들의 연주 실력은 훌륭했다. 클래식과 영화 음악, 대중 음악을 오가는 그 날의 프로그램은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날의 연주 곡목 중 한 곡의 편곡자로 아들의 이름이 인쇄되어있는 것이 프로그램에 보였다. ‘그래서 이 놈이 왔구나.’ 아들이 그 전부터 그 날의 콘서트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작년부터 아들은 학교에서 AP 음악 이론을 공부하면서 학교 합창단에서 부를 노래들을 편곡했다. 또 자기 맘에 드는 음악들을 골라 현악4중주 등으로 편곡을 해서 친구들에게 연주를 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음악을 연주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유투브에 올려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았고, 아들의 편곡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미 전역으로부터 아들에게 악보를 요청해왔다. 그러다가 지역의 한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디렉터가 그 동영상을 보고 아들에게 자기 학교 오케스트라가 쓸 음악을 요청해 와서 아들은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을 했다. 그 날, 지휘자는 아들이 편곡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곡을 해설하고 아들도 소개를 했다. 고교생이 편곡했지만 현악기의 각 파트 특성을 파악하여 편곡이 잘 되었음을 소개한 지휘자는 청중 가운데 그 편곡자가 와 있다며 아들을 호명했다. 아들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실감했다. 그 동안 아빠인 나의 머리 속에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모습이 의미있게 그려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들은 혼자서 음악을 공부하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지난 주에 나는 아들에게 기타를 들고 와서 피아노 앞에 앉게 했다.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각도에서 아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 사진을 사용해라. 인터넷 공간이나 다른 모든 곳에서 너의 이미지를 보여줄 때 이 사진을 써라. 너는 음악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무슨 공부를 하건, 무슨 일이 아들에게 일어나든지 아들 편에 서야겠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6-22

'좋은 부모는 소양을 갖춘 사람'···'된장아빠의···' 책 펴낸 학부모 김정수씨

“좋은 부모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애난데일 소재 알라딘 서점에서 한인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좋은 부모 되기’ 세미나를 연 김정수(사진)씨는 “‘당신은 좋은 부모냐’는 질문을 많이 받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한다”며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동안 경험한 것들과 그 속에 나름대로 얻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부모들과 나누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11월부터 본지 교육섹션에 학부모 칼럼을 기재해 온 김정수씨는 얼마 전 이를 모아 ‘된장 아빠의 버터 아들 키우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지난 99년 미국에 이민온 후 아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명문으로 꼽히는 토마스제퍼슨 과학고등학교(TJ)에 입학해 다니기까지의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씨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의 학습법이나 교육 정보에 대한 관심만 갖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점이나 시각, 인문학 등 소양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예로 ‘인종 차별 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지만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나 언행을 통해 자녀들도 은연중 인종 차별을 답습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또 “부모가 밖에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었더라도 집에 가서도 이같은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은 금물”이라며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1부 전인교육, 2부 TJ고 입시 및 학업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으며, 참석 학부모들은 강의 시간에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나눴다. 한편 김씨는 홍익대 독일어과를 졸업, 앨라바마대에서 사회사업 석사를 마친 후 현재 굿스푼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다. ▷문의: 571-451-7176 유승림 기자 ysl1120@koreadaily.com

2009-06-18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순종은 미국에도

미국에서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자유’와 ‘개성’, ‘독립’이라는 가치가 강조되고 존중되는 이 땅에서 순종이라는 말은 마치 자유를 억압하여 개성을 누르는 단어로 인식되는 것 같다. 유교의 영향이 큰 문화에서 부모와 연장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성장한 부모들은 순종을 중요한 덕목으로 배웠다. ‘윗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했고, 부모와 스승의 말은 우선 듣고 실천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권위주의적인 의식을 분명 내포하고 있지만,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질서를 유지하여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혼란을 방지했던 의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던 부모와 자녀들이 미국에 와서 한결 자유롭고 경직되지 않은 환경을 만나서 적응해 간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멀어진다. 그러나 미국에도 순종이 있고, 미국인들도 순종을 가치있게 여긴다. 미국에서 대학 풋볼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학교 중에 노터데임 대학교가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 학교의 게임이 매주 중계되고, 이 학교의 감독이 바뀌는 것이 CNN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이 학교의 풋볼팀은 유명하다. 이 학교 풋볼 팀을 소재로 나온 영화도 있으며, 이 학교의 응원가를 많은 국민들이 알 정도이다. 노터데임 풋볼 팀에는 ‘학생 매니져’라는 포지션이 있다. 게임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이 포지션은 언제 어디서나 팀 지도자들의 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다. 감독, 부감독, 체력 단련 코치, 포지션별 코치 등 대단히 많은 수의 지도자들이 한 팀에 있는데,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심부름을 시킨다. 그러면 학생 매니져들은 아무 말없이 즉시 움직인다. 물과 수건을 가져다 주고, 전화를 걸어준다. 사람을 데려오기도 하고, 물건을 사오기도 한다. 풋볼 팀이 모두 모여 학교 관계자들과 팬들을 초청해서 하는 행사 중에도 지도자들이 부르면 즉시 움직인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지도자가 하는 일과 지도자의 지시에 일체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지시받은 바를 실행한다. 학생 매니져들의 순종하는 모습은 같은 미국인들이 보아도 눈을 크게 뜰 정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 매니져로서 지도자들의 심부름을 하던 학생들이 후에 하나같이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한다. 수십년 동안의 기록을 보면, 선수 시절 학생 매니져를 했던 학생들이 거의 모두 성공적인 기업인들이 되었으며, 기업의 대표가 아닐 경우도 모두들 거대 기업의 간부가 되었다. 이 학교 풋볼 팀의 감독을 오랜 기간 맡았던 루 홀츠 감독은 그 이유를 젊은이들이 순종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사회가 자유 분방하고 모든 일에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순종하는 사람, 남의 말을 존중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찌 보면, 다들 자기 소리를 내고 매사에 이유를 따지니, 이유 있고 당연한 일을 하는 때조차도 지도자들이 애를 먹을 것은 짐작이 간다. 자유에도 책임이 따르고, 평등한 가운데에서도 구별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미국 사회는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가운데 순종도 인정하고 배울 것을 요구한다. 보이스카웃, 걸 스카웃에서 가르치는 것과, 많은 스포츠 클럽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덕목 중 ‘순종’은 늘 수위에 오른다. 미국 사회도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직과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미국 사회도 찾는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부모들이 미국에 온 후, 우선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미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 체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제도와 문화의 밑바닥에 흐르는 국민 의식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처음에 순종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그 보다는 개성과 독립이라는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져서 아들에게도 순종을 강조하지는 않았었다. 미국에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순종이라는 단어가 크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은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순종의 가치를 잃지 않았는데, 권위적인 문화에서 자란 우리 부모들이 미국에 와서 상대적으로 순종의 가치을 잃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6-15

이민 부모의 진솔한 자녀 교육 이야기 '된장 아빠의 버터 아들 키우기' 출판

한인 부모가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보람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김정수씨(얼굴)는 10년전 미국으로 이민온 후 아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미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토마스제퍼슨 과학고등학교(TJ)에 입학해 다니는 동안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칼럼을 정리, ‘된장 아빠의 버터 아들 키우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김씨는 이 책에서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이 미국에서 자녀 교육을 하는데 겪는 어려움과 고민 등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성장하는 아들과 경험하는 세대차이와 문화차이를 정리했다. 늘 자녀에게 인문적인 바탕 위에 세계를 보는 시야를 아울러 가질 것을 강조하는 김씨는 부모들이 직접적으로 자녀의 교육 과정에 함께 나설 것을 권하고 있다. 김씨는 “부모의 지도없이 아이들이 자기 할 일을 잘 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물을 붓지 않고 밀가루 반죽을 하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아들을 TJ에 입학시킨 준비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진학과 학습 지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 책은 현재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김씨는 오는 12일(금) 오후 7시 애난데일 소재 알라딘 서점 2층에서 ‘좋은 부모 세미나’를 개최하고 자녀 교육에 유용한 정보 및 TJ 입학 준비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2007년 11월부터 본지 교육섹션에 칼럼을 기재하고 하고 있는 김씨는 홍익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에 근무중 1999년 도미한 후 앨라바마대 사회사업학 석사 졸업, 연방 보건복지부 인턴 등을 거쳐 현재 굿스푼에서 일하고 있다. ▷문의: 571-451-7176 박희영 기자

2009-06-08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비교의 아픔

서울에서 중고생 시절 살던 아파트의 바로 옆집에 같은 나이의 여학생이 살았다. 명문학교인 진명여고의 예쁜 교복을 입고 매일 아침 저녁 등하교 시간에 비슷하게 집을 나서고 돌아왔던 그 아이는 공부를 제법 잘 했었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항상 부모님 속을 썪였던 나와는 반대로, 성적이 늘 선두 그룹에 속했던 그 아이는 고교 졸업 후에 명문 여대에 진학을 했고 나는 재수를 해야 했다. 대학생 티를 마구 내면서 그 아이가 대학교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학원을 다녔다. 내가 지금도 그 아이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 아니다. 사춘기의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내 기억 속의 그 아이 모습 중 절반 이상은 순전히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것들이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를 보시면서 늘 속이 상했던 어머니는 반상회를 갔다 오시는 날이면 유독 나를 들볶았다. 반상회라는 것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동네의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이슈에 관해 회의를 하는 자리이면서도 일단 모이면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 곳이라는 것을 나는 옆집 아이 때문에 알았다. “옆 집 딸은 공부를 잘 해서 늘 1, 2 등을 다투는데, 너는 뒤에서 1, 2등을 다투는구나.” “옆 집 딸이 법학과에 입학했는데, 나중에 판검사가 되려나 보다. 그 아이 엄마는 얼마나 좋겠니?” 어머니는 공부 잘하는 옆 집 딸 아이를 그렇게 부러워 했다. 또 나와 그 아이를 내어놓고 비교했다. 성적표를 받는 날에는, 늘 책을 놓지 않는다는 그 아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서로 이웃에 살면서도 내가 그 아이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한 데는 어머니의 잔소리 영향이 컸다. 나는 은연중에 그아이를 마음 속으로부터 싫어하기까지 했다. 멀리서 보면 일부러 거리를 두고 걸어서, 집까지 가는 동안 그 아이를 만나지 않도록 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기억때문인지, 나는 후에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된 이래로 아들과 다른 집 아이들을 비교하는 일을 경계해 왔다. 내가 겪었던 ‘비교의 아픔’을 아들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다른 집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아이들처럼 내 아들도 더 잘 해주기를 바라면서 ‘비교의 본능’이 서서히 내 안에도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자녀들 중에는 왜 그리 똑똑하고 뛰어난 아이들이 많은지, 두드러져 보이는 아이들은 다들 명문학교를 입학하고 우수한 성적을 자랑한다. 하나같이 악기를 잘 연주해서 각종 대회에서 입상을 한다. 스포츠도 잘해서 학교 대표를 하고, 심지어는 외모도 뛰어나다. 한인 사회의 교회는 내 어린 시절 한국의 동네 반상회를 뛰어넘는 것 같다. 신앙생활을 이끄는 것 이외에 타지에 나온 한인들이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기능도 수행하는 교회에서 교육과 자녀들의 이야기는 화제의 절반을 넘는 것 같다. 다른 가정 자녀들의 성공 사례를 듣고 보면서 자기 자녀 교육에 유익한 적용을 하는 것은 장려할 만 하다. 그러나 단순히 부러운 마음만을 느끼고 아들 앞에서 다른 집 자녀를 이야기하다가 은연중 ‘비교의 아픔’을 줄까 봐 늘 조심해 왔다. 어머니의 비교로 인한 나의 청소년기가 늘 기억되어서였다. 지금까지 조심하고 자제하고 경계해 온 것을 앞으로도 지속해야겠다. 그리고 ‘비교의 본능’이 내 속에서 꿈틀거려도 아들에게 ‘비교의 아픔’을 주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더 잘하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할 일이지, 다른 집 아이처럼 해보라는 말은 참고 묻어두어야겠다. 아들이 나를 다른 집 아빠와 비교하고, 아내가 다른 집 남편과 나를 비교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6-08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10년 만의 미소

아들이 천진 난만한 얼굴로 노래를 하고 율동을 할 때, 사람들은 모두 웃음 지으면서 아들을 보았다.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의 유치부 행사에서 아들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노래를 했었다. 그 때 아들은 수 백 명의 어른들이 보는 눈을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미국에 온 이후로는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서곤 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어린 아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짐작이 간다. 어른으로서 영어를 익히고 공부를 하러 온 나도 적잖이 힘들었으니 아들의 학교 생활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은 자명하다. 종종 학교를 가서 아들이 참여하는 연주회와 각종 행사를 볼 때면, 아들의 긴장하는 눈빛을 어김없이 보아야 했다. 상을 받을 때조차 아들은 웃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런 긴장의 표정도 사라질 줄 알았다. 또 아주 어릴 때는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 커가면서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보통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 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동안 아들은 사람들 앞에서 늘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들은 여러가지 행사에서 긴장하는 얼굴로 인하여 두드러져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노래를 하고, 합창단 전체가 부드러운 율동을 할 때, 노래하는 아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조명 아래 아들의 표정이 약간 굳어 있는 것으로도 아들은 금방 달라보였다. 또 다들 부드럽게 율동을 하는데, 아들의 몸은 왜 그리 긴장을 못 푸는지, 뻣뻣한 아들은 무대 위에서 이래 저래 달라 보였다. “잘 하려고 하면, 긴장하고, 긴장하면 잘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즐기도록 해라. 즐기다보면 잘 할 수가 있을 거야.” 내가 아무리 말 해주어도 아들은 무대에만 오르면 긴장의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것이 아들의 개인적인 성격이 아니라, 단정함을 강조하는 한국인들의 유교적인 문화인가 아니면 우리 집안 내력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해 보았다. 나도 그렇고 또 다른 한국 아이들도 아들처럼 긴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주, 나는 전과 다른 아들을 보았다. 학교에서 열린 합창 공연에서 아들은 혼성 합창, 남성 합창, 학년 합창 등으로 구분된 프로그램에 나가 여러 차례 노래했다. 나는 아들의 표정과 동작을 유심히 살폈는데, 아들은 전과 달리 편안한 얼굴로 노래하고 있었다. 아들의 표정이 긴장을 하지 않으니, 동작도 자연스러웠다. 편안한 얼굴에 유연한 동작으로 노래하는 아들은 음악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 가운데 긴장하고 동작이 경직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나는 무대 위의 아들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하면서 음악의 흐름을 따라 편안한 율동을 섞어서 노래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교생들이 합창을 한다고 하면 보통 줄을 맞추어 서서 움직이지 않고 지휘자를 따라 노래하는 것을 연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달랐다. 줄 서는 것 없이 자유롭게 어울려 서서 마치 뮤지컬처럼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했다. 그래서 그 분위기를 타고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긴장된 표정과 동작을 가진 사람은 금방 눈에 띄고, 심하면 무대 위의 공연을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이 늘 남 따라서 남과 같이 행동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부드러운데 혼자 경직된 아들을 보는 것은 그리 편치 않았었다. 생각하니, 아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 미소를 찾는데 10년이 걸렸다. 미국에 온 이래로 이번처럼 편안하게 사람들 앞에 선 아들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에게 칭찬을 한껏 해준다. 그리고 궁금하다. 무엇이 아들의 변화를 만들었을까.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6-01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영재보다 상상력

아들이 네 살 때 서울 거리의 차량 모델을 모두 외워서, 지나가는 차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하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주차한 차량 위에 포장을 씌워도 그 속의 차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맞추었다. 한국차와 수입차를 막론하고 어린 아들이 그 디자인을 모두 기억했던 것은 미니카를 좋아하던 아들에게 아내가 자주 미니카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약 20여 종류의 차들을 구별하는 것을 보면서, 반복적인 학습이 주는 결과를 아들을 통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보며 몇몇 사람들이 영재, 수재 운운하면서 칭찬인지 과찬인지를 했었다. 어린 아들이 거의 모든 차량의 이름을 정확히 대니 놀랍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반복적인 학습의 결과이지 아들의 두뇌가 선천적으로 뛰어나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아들은 영재가 아니었다. 영재의 기준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나는 아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어주고는 그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고, 두 이야기를 합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아들은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나는 아들의 상상력을 칭찬하면서 그런 아들과의 시간을 즐겼다. 아들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다른 동생을 하나 더 추가해서 동생들이 연합해서 형을 혼내주는 아야기를 꾸몄다. 해와 달이 된 남매가 호랑이에 쫒길 때는 헬리콥터가 등장해서 남매를 구출했고,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에서는 산신령이 어딘가를 간 바람에 도끼를 잃어버린 나뭇꾼이 직접 연못에 잠수를 해야 했다. 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뭇꾼이 금도끼를 찾기를 원했다. 나는 아들과 더 엉뚱한 이야기를 만드느라 말도 안되는 막장 동화(?)를 만들면서 행복했다. 아들이 세 살, 네 살 때였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의 영재성을 찾고 싶어한다. 모두가 다 자녀들을 영재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재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서 그대로 따라 한다고 우리 자녀가 영재가 되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개개인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영재성을 소위 선행 학습의 성취로 착각한다. 지금 4학년인데 6, 7 학년 과목을 공부하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해서 그 아이가 과연 영재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선행 학습이지, 영재성(gifted and talented)과는 무관하다. 영재들은 선행 학습을 할 수 있지만, 선행 학습을 하는 모두가 영재는 아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를 공부하면서도 독창적이지 못할 경우 자녀들은 성취를 경험하기 힘들다. 부모의 지도에 의지해 소위 영재 교육을 받아 명문대를 간 사람이 그 분야에서 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가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공부를 하는 경우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영재 교육이 소위 명문고교와 명문대 입시를 염두에 둔 단어가 된 것 같은 요즘, 바람직하다는 길을 따라 부모가 자녀를 소위 엘리트 코스로 인도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방목(?)을 하면서 자녀들을 자유스럽게 키우는 것이 옳은지는 매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렇게 엘리트를 만드려 해도 모두 엘리트가 될 수 없고, 자유 방임으로 방목을 해도 후에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영재상은 분명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영재 교육을 타이틀로 걸고 발행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또 한국과 미국에서 어떤 학원에도 아들을 보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들이 오늘날 집에서는 우리말만 하면서도 영어 과목을 무난하게 하는 이유를 나는 그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동화 바꾸기 놀이에서 찾고 싶다. 아들의 상상력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일 때 작동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눈 앞에서 실험을 하는 것들 말고는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학교 공부 아닌가? 이해라는 것이 상상과 연결된 것은 자명하다.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와 함께 태권도를 익혀서 못된 왕비를 혼내주는 이야기를 어린 아들로부터 듣던 나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5-18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엄마와 아들

미국서 살면서 고교생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전에 엄마들이 최소한 세 번을 운다는 말이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사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세대 차이에다가 문화 차이가 더해지니 부모 자식간의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엄마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말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과 자녀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부모들과 자녀들의 의사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른데, 대학 입시라는 중대사를 두고 가족간의 논의 과정에서 그 갈등이 표출된다는 것 같다. 지난 주 아내가 아들과 대화 중에 눈물을 흘린 것은 대학에서의 전공을 두고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이제 12학년이 되는데, 그 전부터 대화하고 생각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전공을 택하겠다는 아들을 보면서 아내는 한숨을 쉬어야 했다. 부모 앞에서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하고 그 근거를 나열하는 아들은 아내가 생각하는 어린 아들이 이미 아니었다. 결국 엄마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부모 뜻대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아들이 그렇게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대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아들의 의견 전달 방식도 아내에게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빠, 엄마가 도대체 왜 우세요?” “엄마는 아빠하고 달라.” 엄마가 왜 우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아들에게 짧게 설명을 한다. 살아오면서 내가 본 아내의 모습은 나보다 더 아들을 직접적으로 챙기는 것이었다. 아들의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챙기고 몸이 아픈지 불편한지 늘 옆에서 살핀다. 아들이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대체로 준비를 해서 만들어 주고, 아들의 몸 상태가 안좋으면 필요한 약을 챙긴다. 나는 아들이 좋다면 좋은 줄 아는데, 아내는 정말로 아들이 좋은지 살펴본다. 이번에 대학 전공과 관련하여 아들이 물러서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하자 나는 일찍 마음을 바꾸었다. 공부는 아들이 하는데,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즉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그 분야의 공부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철저히 준비할 것을 말했다. 아들로부터의 뜻밖의 일격(?)에 나도 놀랐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부모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내는 가슴 깊은 곳부터 아픔을 느꼈다. 아내는 나보다 더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혈육’이라는 말과 ‘가족’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아내는 아들을 자신과 동일하게 여긴다. 아들이 아프면 자신도 아프고, 아들이 기쁘면 자신도 기뻐한다. 아들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나 결연하고 용기가 난다. 혼자 자라는 아들이 버릇 없는 아이 소리를 들을까 어릴 때부터 엄하게 야단을 치면서 바라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지 않은 것도 아내였다. 아내는 미국에 막 와서 영어를 못하면서도 아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빌려 읽혔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아들을 나보다 먼저 만났다. 아내와 아들의 인연은 나의 그것보다 열 달이나 더 되고, 그 열 달도 보통 열 달이 아니다. 아내가 아들을 자기 몸 속에서 혼자 키우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같은 남자끼리라면서 종종 낄낄거리면서 남자들만의 화제를 말하고 아내가 못하는 운동을 즐겨도 결국은 아내와 아들의 끈이 더 강하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까? 아내가 아들을 아끼는 마음을 아들은 언제쯤 알까?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5-11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입시

토요일인데도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아내가 따뜻한 국과 밥을 내놓는다. 간밤에 잠은 잘 잤는지, 컨디션은 어떤지를 묻는 아내에게 아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대학 입학 시험인 SAT를 보러 가면서도 조금도 긴장이 안되는 모습이다. 아들은 잘 깎아진 연필, 지우개, 수험표, 계산기, 물 한 병, 쵸콜렛 한 개를 챙긴다. 아침 일곱시 45분에 모여서 열 두 시 45분에 시험이 끝나니 그 사이 먹을 간식이 필요하기도 하겠다. 시험 보는 아들이 계산기를 가져가는 것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늘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시험은 계산기 없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리라. 여름 방학 중 더 공부해서 또 한 번은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모인 내가 긴장이 되는 것은 시험이라는 단어에 길들여진 조건반사적 반응이다. 고교 시절 내내 공부를 게을리 했던 나는 재수하던 해, 하루 다섯 시간씩을 자면서 공부했었다. 일년 내내 모든 것을 참고 공부만 했던 내가 시험 날 긴장한 것은 당연했다. 또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점수가 정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혜화동 대학로 근처 동성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던 날은 날씨도 제법 차가와서, 고사장 건물에 스팀 들어오는 소리가 땅, 땅 계속해서 울렸다. 지금은 구경도 하기 힘든 흑백 명함판 사진이 붙은 수험표를 책상 위에 놓아두면 감독관 선생님들이 오셔서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누어 주셨다. 24년 전의 일이지만, 그 날 첫 문제를 읽으면서 내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깊은 호흡 소리가 나왔음을 기억한다. 백일 기도를 한 후, 시험 당일 고사장 문 밖을 지키며 엿을 붙이고 자녀의 고득점을 기원하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는 찹쌀떡과 엿을 사주면서 시험 잘 보기를 바라는 가족과 친지들이 있었다. 아침부터 일찍 나와 고사장 앞에서 따뜻한 차를 따라주고 선배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한국의 입시 날은 그렇게 개인적인 긴장과 주변의 북적거림이 교차하는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아들을 태우고 가서 고사장인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운동복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학생들이 계산기 하나 달랑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토요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는 것이 번거롭다는 듯 헝클어진 머리에 부수수한 모습의 아이들이 담담하게 시험장으로 가는데, 부모들은 모두 차 밖에 나오지도 않는다. 만일 건물 앞까지 따라가기라도 하면 촌스런 부모가 되기 십상이다. 아내는 차 안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잠시 기도한다. 실수없이 아들이 실력 발휘 잘하기를 함께 기도한 후, 아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차를 돌려 고사장을 나온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입시를 치르지 않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옛날 한국과 같은 겨울이 아니어서일까? 아들에게 입시 과정이 시작되었지만, 그 전과 같은 느낌은 전혀 없다. 한국에서 자라며 입시를 치르고 경험한 나는 미국에 와서까지 그 때와 같은 분위기를 은근히 기대했나 보다. 이것은 다른 제도, 다른 문화에서 자라는 아들에게 아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늘 바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나는 아들이 시험을 앞두면 다른 것을 모두 참고 공부만 하면 좋겠다. 시험 보는 날은 더 긴장을 했으면 좋겠다. 좀 더 진지하게 매사에 임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램이 어지간해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도 나는 안다. 미국에서의 10년이라는 시간은 강산뿐 아니라 가족간의 문화도 바꾸어 버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5-04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카운슬러와 친해지다

아들 학교의 카운슬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전과 다르게 편해졌다. 카운슬러 선생님이 바뀐 것도 아니고, 학교의 정책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 동안 몇 번 만나다보니 서로의 얼굴도 익고 그 만큼 나의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미씨즈 스펜서(Mrs. Spencer).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아들이 어느 과목 선생님과 사이가 불편한 가운데, 그 선생님으로부터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은 후였다. 그 선생님은 카운슬러 선생님께 아들의 감정 처리가 미숙하고 그래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미씨즈 스펜서는 즉시 내게 연락을 했다. 나는 그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특별 심리 상담을 권하는 그녀에게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달라고 부탁을 했던 나는 그 날, 한 시간 반 동안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그녀가 정말로 아들을 걱정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미국인 특유의 조심스러움으로 아들에게 혹시 있을 더 큰 문제를 예방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지나친 것 같기도 했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틀림이 없었다. 아들 딸들이 공부를 잘 하고 무언가 선행을 해서 칭찬을 받을 일로 학교를 방문하지 않는 한, 모든 부모에게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 속에서의 선생님들의 권위와 한국에서 부모가 자라는 동안 학교에서 경험한 것들은 미국에 와 있어도 부모들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다. 학교 방문 또는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래서 늘 편치가 않다. 그런데 미씨즈 스펜서는 그런 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편안하게 대화를 하도록 이끌면서 아들의 문제를 상담하게 했다. 아들이 나에게는 자식이지만, 그녀에게는 학생인지라, 나 역시 객관성을 가지고 대화를 하기 위해 애쓰는데, 한 번은 아들이 힘겹게 들어가 연주하던 재즈 밴드를 학기 중에 그만 두겠다고 했다. 대학도 아니고 고교에서 학기 중 수강 과목을 취소한다는 것은 처음에 대단히 이해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고, 또 밴드 선생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녀와 나는 아들의 의견을 받아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수강 중인 과목을 취소하는 것은 분명 안좋지만, 아들의 편을 한 번쯤은 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본인의 내부에서 찾으라고 이끌었던 것이 어린 아들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날도 나는 미씨즈 스펜서와 오랜 시간을 대화했다. 아들의 성장 과정과 부모로서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또 한국에서 성장한 부모가 미국에서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다. 자녀 교육이 원래 쉽지 않지만, 나서 자란 곳을 떠나 살면서 자녀를 이끄는 것은 정말 안개 속을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민 부모들의 인내와 노력이 대단하다면서 우리 가정의 이야기를 모두 경청했다. 아들을 더 이해하고, 더 잘 이끌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연극과 음악 활동에 빠진 아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자 그 후 또 나는 그녀를 만나야 했다. 성적이 부진해서 부모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와 또 한번 아들의 공부만이 아니라 많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했었다. 그리고 지난 주 아들의 대학 입시를 앞두고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났다. 학교보다는 전공을 우선 결정해야 하는데 아들이 음악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좋은 결정을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가정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아들의 장단점도 너무 잘 아는 그녀는 나와 대화하는 것이 이제는 무척 즐겁다고까지 말했다. 말썽꾸러기 아들 덕에 카운슬러 선생님과도 친해지다니. 아들을 아껴주시는 카운슬러 선생님이 한없이 고맙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4-27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스승을 평가하는 고교생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스승을 평가해 본적이 없었던 나는 유학을 와서 공부하던 중, 매 학기 종강 날이면 어김없이 해야했던 ‘교수 평가’가 제법 편치 않았다. 감히 학생이 스승을 평가한다는 사실이 놀라울뿐이었다. 다른 미국 친구들처럼 나도 스승들을 평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것은 세 학기 째 공부를 마치던 날이었다. 그 전 학기에는 모두 좋고 감사하다고만 썼던 나도 처음으로 교수님들을 냉철하게 생각하면서 장단점을 느낀대로 기록하고 서술했다. 그러나 공부하는 내내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여전히 거북한 일이었다. 제자라는 입장뿐 아니라, 나의 평가를 누군가 보고 당사자에게 전할 것 같은 걱정도 들었다. 아무튼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에게 학생이 교수를 평가한다는 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선생님들은 감히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권위를 가지신 분들이었다. 나를 가르쳐 주신 고마운 분들이면서도, 교실에서는 모든 권력을 장악하신 분들이었다. 시험을 통해 친구들과 나에게 서열을 정한 후, 부모님들에게 성적표를 보내신 분들이었다. 때로는 지나친 체벌로 잊지 못할 안타까운 기억도 주셨지만, 따뜻한 격려의 말로 나의 마음에 위로와 사랑을 주셨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를 아껴주시고 격려해 주신 선생님들의 은혜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선생님들을 제자가 평가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것인가? 나의 사고의 세계는 그렇게 선생님들을 윗자리에만 모셔왔다. 그런데 교육도 서비스의 하나로서, 스승과 제자를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점에서 보는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스승을 평가하는 것이 결코 무례하지 않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자료로 쓰고자 시행하는 이 제도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고교생들도 자신들의 스승을 평가하고, 그들의 의견이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지 않은 고교생들에게 제도적으로 스승을 평가하게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만남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답게 아이들은 그들의 스승을 평가하여 인터넷 공간에 기록을 남긴다. ratemyteachers.com이라는 웹 사이트는 아들이 수강 신청을 할 때면 항상 참고하기 위해 방문하는 웹 사이트이다. 이 웹 사이트에는 미국, 영국, 카나다 등 6개 국의 수천개 학교, 수만명 선생님들에 대한 학생과 부모들의 의견이 정리되어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들은 자기가 경험한 선생님들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기록한다. 선생님의 교수법과 성품 등에 대한 학생들의 주관적인 의견을 그대로 올려놓고 보여주는 이 웹 사이트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학생들의 눈으로 본 선생님들의 모습을 전달한다. ‘쉽게 가르치는가?’등 세 가지 항목에 대해 5점 만점으로 각각 점수를 표시한 후, 석 줄 또는 넉 줄의 문장에 자기의 의견을 담아서 기록을 한 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성적을 주지 않는다면서 선생님을 ‘짠’ 선생님이라고 쓴 글부터, 자상하고 좋은 분이라고 적극 찬양하는 글까지 학생들은 솔직한 감정을 기록한다.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추가 과제물을 부과해서 자기를 특별히 도와주신 선생님의 이야기도 있고, 자기의 성적을 망쳤다면서 원망하는 글도 있다. 아들이 수강 신청을 할 때마다 이 웹사이트를 참고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한 두명의 의견이 아닌 여러 명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관적인 견해들이 객관성을 조금은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선생님께 말 대답을 하면 혼나고,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 누가 혹시 들을까 조바심을 하면서 자란 나의 눈에, 스승을 평가하는 고교생들은 분명 놀랍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4-20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하버드에서 온 이메일

집에 오니 아들이 이메일 두 통을 프린트해서 보여준다. 하바드대학교 로스쿨의 두 교수로부터 온 이메일이다. 두 교수의 이메일 내용은 마치 의논을 한 것처럼 비슷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십시오. 당신의 열정이 향하는 것을 따르십시오. 당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공부해야 성과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십시오. 성공적인 대학 교육 과정을 마친 사람만이 로스쿨에서도 성공적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하버드 로스쿨의 두 교수에게 이메일을 해서 자신이 후에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대학 과정에서는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면서,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후에 로스쿨에 진학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 지를 물었다. 그리고 두 교수는 아들에게 그렇게 답을 해왔다. 이메일을 보여주는 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갓 태어나서 우유병을 입에 물었을 때부터 온갖 종류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더니 생활 속에서 음악을 듣는 수준에만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아들은 학교 재즈 밴드에서 연주를 했고, 뮤지컬에 출연한 후, 친구들과 아카펠라 그룹을 조직해서 노래 연습을 하고 무대에서 공연도 했다. 그러더니 작곡을 하고, 편곡을 해서 친구들에게 연주하게 하고는 요즘은 그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려놓기도 한다. 학교에서 AP 음악 이론을 공부하는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즐겨하던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고, 또래들이 좋아하는 대중 음악을 합창, 현악 4중주 또는 오케스트라 연주로 편곡하는 하는 일을 즐긴다. 아들에게 음악은 분명 즐거운 일이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측면에서 지속적인 동기부여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에 아들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면 안되냐고 했을 때, 나는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었다. 음악이 취미일 때는 즐겁고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음악이 직업이 되면 즐기기 힘들 수가 있고, 어지간히 뛰어나기 전에는 인정받기 힘들다는 음악 전공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상대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 공부하면 더 많은 곳에서 쓰임이 있는 것을 공부하기를 권하면서, 대학 졸업 후 로스쿨을 갈 것을 권했었다. 아들이 평소에 글 쓰기를 어려워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펴는 것도 그런 권유를 하게 한 이유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반드시 로스쿨을 가야하고 그 길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들의 적성과 재능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꾸준한 노력을 하게 하기 위해서, 또 대학 입학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그 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아들에게 로스쿨을 권했었다. 사실 아무리 권해도 아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꺾지 않는다면,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막을 수 없음을 나는 잘 안다. 공부는 아들이 하니까. 솔직히 나는 아들의 숨은 재능과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지금은 모르지만 아들의 속에 잠재해 있는 능력이 무엇일까 늘 궁금하다. 아들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은 물론 주변과 이웃, 사회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며, 또 그 일을 통해서 세상에서 인정 받으면서 사회에 기여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아들이 잘 자라고 있음이 감사하다. 자기 생각을 아빠에게 주장하고자 그렇게 대학 교수들에게까지 자문을 구해서 나에게 내놓다니. 짜아식, 많이 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4-13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따돌리기 vs 따뜻하기

‘왕따’나 ‘은따’라는 말을 온라인 공간에서 보고 들을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앞 자리에 앉았던 혼혈 친구가 떠오른다. 요즘 같았으면 그 친구는 왕따를 당했을까? 그 친구는 눈빛이 파랗고 머리 색깔도 금색이어서 금방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었다. 외모가 그저 다르다고 생각했을 뿐 별 다른 기억은 없는데, 지금 생각하면 친구들이 모두들 그 친구와 거리를 두지 않고 잘 지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도 성격이 좋아서 뒷자리에서 남자 아이들이 장난을 쳐도 화를 내기 보다는 잘 받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혼혈이었으며, 한국 사회에서 마음 고생을 좀 했을 것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훨씬 후에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쯤이다. 한국에서 혼혈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서 외모와 사고 방식이 남과 다르다는 것은 집단 속에서 많은 고생을 할 수 있음을 의미란다. 다수가 소수의 다름을 그냥 보아주지 않고 궁지에 몰아가는 것, 그 소수들에게 다수와 같아지라고 강요하는 것, 다수가 다수이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고 방식은 삶 속에서 얼마나 우리들을 괴롭히는가? 만약 미국의 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이 외모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교사로부터 골치거리 취급을 받는다면 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외모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든 학교 활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면 미국의 학교에서 나의 아들은 지금과 같이 공부할 수가 있을까? 백인들과 흑인들 사이에서 마음 졸이면서 학교를 다닐 아들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미국에서 첫해에 만난 아들의 학급 친구들 중에 덩치 큰 아이 하나가 종종 아들을 괴롭혔는데,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 좋은 말로 타이르셨다고 아들은 말했다. 이제 막 미국에 온 친구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지 괴롭혀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먼저 아들을 챙기기 시작했단다. 외모도 다르고 아직 영어도 못하는 친구를 선생님은 왜 그렇게 챙기실까?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을 보면서 선생님을 따라했다. 꼭 선생님처럼 아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함께 앉아 공부를 하고 밥을 먹는 친구들 속에서 아들은 점점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게다가 덧셈, 뺄셈 좀 미리 공부시켰더니 학교 수업 시간에 계산을 빨리 했던 아들을 선생님께서는 추켜 세우기까지 하셨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들은 항상 먼저 문제를 풀고는 다른 아이들의 문제 푸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선생님의 지시였다. 어딜 가나 아시아 사람들이 적어서 백인들로부터 눈길을 받아야 했던 그 곳, 앨라배마에서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늘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았었다. 식당엘 가도, 경기장엘 가도 백인들은 우리 가족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길 속에 식사를 하고,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채 식당을 나올 때는 항상 우리가 그들 속에 있지 않음을 느껴야 했다. 그런 분위기의 남부 도시에서 일곱살 아들은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들의 학교 생활을 걱정한 것은 단지 아들의 영어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심히 아들을 보살피면서, 다른 아이들을 이끌어서 친구가 되게 하신 선생님의 각별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들도 왕따를 경험했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왕따 문제는 선생님들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전체 사회의 의식과 문화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께서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이끌면 더 좋겠다. 성격이 유별나고, 외모가 다르고, 장애가 있거나,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어떨까? 왕따로 인해 고생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한 번만 헤아려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잘못을 눈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 한마디에도 정확한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좋겠다. 미국에 온 이래로 외모와 문화가 다른 ‘소수’가 되어 살아가면서, 한국 땅의 ‘소수’들이 마음에 떠오른다. ‘왕따’가 ‘왕창 따뜻한 친구되어주기’로 변하는 날은 언제일까?

2009-03-09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SG 워너비

중학교 시절에 FM 라디오를 켜면, 하루 중 많은 시간들이 외국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팝송이라고 일컫던 음악들은 미국과 유럽의 음악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단위의 프로그램들은 우리 가요보다도 팝송들을 더 많이 내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되면 FM을 들어야만 하는 것처럼 여기던 그 때,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팝송의 세계에 빠져들면서도 우리 가요를 아울러 들었던 이유는 우리 가요가 우리의 정서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가사를 잘 모르고 오직 선율만 즐기던 팝송에 비해서 가요는 그 가사가 듣는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이성에 눈을 뜨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눈에 띄게 경험할 때, 가요는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산울림’의 음악 세계를 좋아했고,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음악들을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후에는 이문세와 신승훈을 들으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 약 500장의 각종 음반을 짐과 함께 부쳤던 저는 여행을 할 때마다 아들에게 우리 가요를 들려 줄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해서 몇 개 주를 관통하는 여행길에서 아들은 제가 서울에서 좋아하던 음악들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해서 들으면 아들도 따라부르고는 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우리 가요를 따라부를 때면 저는 미국에서 자라는 아들과 작은 끈을 하나 더 연결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와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들과 공유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글 학교 교사 시절 직접 가르쳤던 동요들과 애국가 말고도 아들이 생활 속에서 엄마 아빠가 듣는 한국의 음악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사실 욕심입니다. 아들이 지금 듣는 음악들을 제가 하나 하나 알고 즐길 수 없는 것처럼, 아들도 제가 즐기는 음악들을 알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다만 자기 나름대로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음악들은 골라서 듣습니다. 마치 전에 교복을 입었던 10대의 제가 가사의 내용도 모르면서 ABBA의 음악을 들었던 것처럼, 아들은 가사를 완전히 이해 못하면서 SG워너비의 노래들을 듣습니다. 휴대 전화에 MP3 기능이 추가 된 후로는 전화로도 음악을 듣는데, 많은 한국 가요 가운데 SG워너비가 단연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불러 유명한 Simon and Garfunkel의 영문 첫자를 따고 그들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wanna be)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는 그들의 음악은 분명 돋보입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던 아들은 가사의 의미를 물어옵니다. 그러나 설명을 해주어도 가사를 아주 잘 이해하는 눈치는 아닙니다.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주한 외국인이 명절 특별 프로그램에 나와 우리 가요를 부르는 것도 같습니다. 늘 부모와 우리말을 하는 탓에 발음은 좀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가사를 깊이 느껴야 노래 곳곳에 감정이 실리는 법인데, 아들은 그렇게까지 노래하지 못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미국 노래들을 부를 때 가사를 완전히 느껴서 상대적으로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래도 아들이 한국 가요를 부르는 것은 좋습니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한국을 더 알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세월이 흐른 후에도 아들을 만나서 함께 부를 노래들이 있다는 것은 아들과 또다른 방법으로 소통함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아들이 우리 음악을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2009-02-23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복을 입었고 군대에서도 군복을 입었던 저는 사람의 개성과 자유를 억제하면서 획일과 통제가 모두에게 정당화 되어 있는, 군대라는 집단을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자랄 때 어른들이 “남자는 군대를 가야 사람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습니다. 문란하고 문제 투성이인 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모를까, 보통의 성실한 젊은이들에게는 20대 초반의 황금기를 군에서 보내는 것이 공연한 시간 낭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법을 준수하고 나라를 위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대학 2학년 때 입대를 해서 33개월 15일을 대한민국 공군에서 근무했습니다. 솔직히 군인이 되어 세번째 성탄절을 군복을 입고 비행장에서 보낼 때는 젊은 시간이 얻은 것 없이 마냥 흘러간 것 같아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40이 넘어 아들을 키우면서 군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돌아보니 군대야말로 절제와 인내를 가르쳐 준 곳이었고, 계획적으로 일한 후 결과를 반성하는 것을 가르쳐 준 곳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익히려면 도저히 익힐 수 없는 많은 것 들을 강제적으로 하게 하여 습관이 되게 하고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어 주는 곳입니다. 요즘 저는 아들이 젊은 시절에 군대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들에게는 아무리 자주 말해주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기 전에 계획을 세워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과 비교적 짦은 시간을 써서 공부할 것을 나누고, 매일과 매주, 매달의 공부 계획을 세우라고 말해도 그리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획을 반드시 적어서 정리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계획대로 했는지를 확인하라고 해도 그 때 그 때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공부합니다. 계획을 세우는데 드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면 되고,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면서 생각나는대로 시간을 활용합니다. 자기 주변을 깔금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눈에 띱니다. 자기 방을 정리 정돈하고 자기 물건을 사용하면 제자리에 놓는 것을 아들은 귀찮아 합니다. 그래서 자주 자기 물건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어려서 그러겠지라고 여겼는데, 점점 자라도 도무지 변화가 없는 것은 종종 걱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군대는 국가의 방위를 위해 존재하면서 아울러 그 구성원들에게는 좋은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익히면 평생 동안 좋을 마음가짐과 습관을 개인에게 심어주는데는 군대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기 싫고 힘들어 보이는 일도 하게 하고,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결국 스스로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단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지도자의 의지를 따르며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합니다. 또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을 배려하면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합니다. 이런 훈련은 후에 군을 떠나 살면서도 개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게을렀던 20대의 입대 전에는 공부를 등한히 하고 F학점도 받았던 제가 제대 후에는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것과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으려고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은 순전히 군대가 저의 마음가짐과 습관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요즘, 상사의 지시에 순종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성원과 화합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은 군대에서 가장 잘 익힐 것입니다. 군대가 구성원들에게 하는 것처럼, 강제적으로 좋은 습관을 아들에게 들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자유롭고 강제가 없어서, 모두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이 땅에서, 점점 군대 생활 예찬론자가 되어갑니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0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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